詩 • 든 • 손

in #steemzzangyesterday

얼굴이 하얗게 센 마른 풀 속에서
숨소리도 없던 냉이가
핼쓱한 눈을 깜빡이며 안부를 물었다

마늘밭 이랑을 지나는 해가
아직 덮인 이불귀를 토닥이면서도
이랑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봄은 언제나
종종걸음으로 냇물을 건너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간 풀뿌리를 깨운다

봄이 입술을 오므려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어주면
간지러움을 참다못한 언 땅이 꿈틀거렸다

밭이랑이 재채기를 하면서
숨어 있던 아지랑이가
겨울을 따돌리고 약속을 지킨
봄을 알리고 다녔다

image.png

그대는 오늘도 안녕한가/ 여태천

몇 명의 아이들이 어제처럼
몸보다 길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지나간다
아이들의 길어진 머리끝에서
어둠은 시작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저녁을 기다리는
그대의 작은 집 아직도 캄캄한
창문은 내 그림의 배경이다

11월의 거리에서
오들오들 떨며 안녕하시냐고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그림 속의 그대도 그런가
수직의 언덕길을 오후의 햇살이 넘어설 때까지
무거운 내 그림의 구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무거워진 저녁의 나뭇잎들이
그대의 등 뒤로 떨어진다

쫓기듯 낙엽의 무게를 빨갛게 그려 넣으며
이건 연습이야, 라고 중얼거린다
그림자가 희미해진 길 위로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시간들
그 뒤로 점차 한쪽으로
그대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질 것이다

기이하게 늘어진 그림 속으로
저녁이 벌써 반 넘게 옮겨지고 있다
그대는 여전히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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