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지난 봄
하르르 지는 꽃을 보며
철부지가 되어 좋아 했습니다
어제는 노릇노릇 물든 가을이
뿌리를 덮어주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반달처럼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늘은
하루살이처럼 하루도 채 못살고 지는 해를
아무 말도 못하고 보냈습니다
그림자가 앞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말없이 보고 있을 누군가의 눈에
소실점이 되는 연습을했습니다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 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 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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