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든 손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산그늘이 더 깊어질까
잠 못들고 우는 부엉이 소리가
마을로 내려왔다
팥죽 끓이는 가마솥 옆에서
하얀 새알심이 많이 들어간 그릇에 눈이 갔다
그땐 알기나 했을까
사는 일이 어두컴컴하고 뜨거운
팥죽 같은 것이라고
살면서 어쩌다 느끼는 행복이란
팥죽 속에서 건져 먹는 새알심 같은
그렇게 드문드문 느끼는 거라고
그만큼만 해도 족하다고
동짓날/ 이향아
나는 지금 일 년 중 가장 깊고 그윽한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둠은 팥죽의 새알심보다 든든하고 찰지다
크게 낭패를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내놓을 게 없는지
다 저문 녘까지 이루지 못한 꿈을
부끄럽게 진설한 제상 앞에서
이제는 그만 걷어 들이겠노라 인사를 올리고
처음이지만 마지막인 듯이
내가 건너온 그중 푸른 밤을 바친다
촛불은 잊었던 일들 하나씩 만화경으로 피워 올리고
나도 이제 헛된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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