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86.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 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찾아오는 사라이라고 없는 집에, 마을 전체가 쥐죽은 듯이 고요한데 염도 못한 강청댁 시체를 홀로 방안에 굴려놓은 채 밖에 나앉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송장 치다꺼리를 하는 동안 용이는 어머니를 따라 잔칫집에 왔다가 쫓겨난 소년처럼 까대기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실상 몇 번 방에 들어가 보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에는커녕 방문 앞에도 가볼 수가 없었다.
풋살구 같이 오종종하고 빈한해 보이는 얼굴을, 입안에 밥을 밀어넣으며 눈앞에 떠올려본다. 솜털이 햇빛에 보송보송 일어섰던 하얀 얼굴이 저절로 솟아 오른다. 푸른 빛이 도는 눈에 눈물이 그득 고이던 얼굴, 용이는 목이 메었다.
-토지 제4편 역병과 흉년 4장, 골목마다 사신(死神)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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