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109.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 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나비 모양의 백동장식을 모서리에 촘촘히 박은 괴목함 거울을 세워놓고 머리를 빗고 있는 서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누구 하나 별당 뜰에다 꿇어앉혀 놓고 몽둥이질이라도 실컷 했으면 속이 우련해질 것 같다.
하얀 당목 적삼에 뱀같이 꿈틀거리는 새까만 머리채는 때마침 들창을 통해 비쳐 들어오는 환한 아침 햇빛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머리를 엮어내리는 하얗고 가는 손, 그것은 마물 같고 열 손가락에 오목오목하게 박힌 손톱은 이름 봄날 바람에 날아 내리는 매화 꽃이파리 같다.
꿈은 화창한 봄날의 바람 같고 도화(桃花) 같고 비단치맛결같이 간지러웠다.
-토지 제5편 떠나는 자(者)와 남는 자(者) 8장 봄 풀과 겨울 나무 중에서-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