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94.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 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마을마다 정성을 모아 올린 기우제는 아무런 영험도 없이 보리를 완전히 망쳐놓은 뒤에야 비는 내렸다. 보리 타작도 못한 채 논에 모를 심었고 수전(水田)은 날로 푸르게 변모되어 갔으나 농부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었다.
뭍을 향해 차오르는 밀물같이 달이 어느 위치에 이르렀을 때 뭍에 쌓아올려진 방천 벽에 물을 부딪칠 것이다. 달이 어느 위치에 이르는 시기가 중요하다. 즉 기다리는 일이 중요하다. 바다는 만조를 향해 뭍으로 뭍으로 넘쳐오르고 있으니 얼마나 호기롭고 충일 된 시각의 흐름인가.
돌아서 사랑으로 걸어가는 눈앞에 초롱불빛을 받고 음산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던 마을의 장정들이며 상복을 입고 있던 고그마한 두 게집아이먀, 개기름이 번들거리던 곰보 얼굴, 각설이처럼 손짓발짓 몸까지 흔들어대면서 가락까지 붙여가며 지껄이던 윤보의 모습들이 발길에 밟힌다.
-토지 제4편 역병과 흉년 13장, 흉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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