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이야기] Chapter12. 숨겨진 소년들 (1)

in #stimcity23 days ago (edited)

외꾸눈 소년



한편, 501 지구의 소년은 한쪽 눈이 멀기 시작했다. 탑에서 뛰어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년 이안이 '이안(二眼)'인 것은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뒤집힌 세계와 그 뒤집힌 세계의 뒤집힌 세계. 가혹한 운명인지 모른다. 하나의 세계를 헤집어 보기에도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 동시에 뒤집힌 세계까지 눈에 담아야 한다니. 그러나 어차피 모든 것이 쌍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이안(二眼)'으로 태어나 하나의 세계만을 보겠다는 것은 한눈을 감고 사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501 지구 소년의 한쪽 눈은 스스로 시력을 놓기 시작했다.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501 지구 소년의 시력 상실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소년은 어떤 능력, 어쩌면 저주 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오류 검증의 손이 바로 그것이다. 손에 닿는 것이 모두 황금으로 변했던 고대 왕의 손처럼, 소년의 손에는 오류 감지 센서가 달려 있어서 손대는 모든 것이 자신의 오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으니, 오류를 해소하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보이는 오류를 외면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불가능한 일로, 예를 들어 검색대를 통과하려고 해도 검색대와 그 주변 기계장치들의 숨어있던 오류들이 전부 드러나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그것들을 모두 해결하거나 해제하기 전에는 통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손대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오류를 드러내니, 인간관계에서도 모두가 관계의 오류를 드러내고 소년에게 화를 내곤 했다. 왜 이딴 것들을 들춰내냐며. 오류 한두 개가 우리 관계의 전부냐며 소년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마다 소년은,



"씨발, 보이는 걸 어떡해!"



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고 싶어 보는 것이 아니었으니. 소년은 결국 참다못해 마법사를 찾아 하소연을 했다. 이 저주받은 재능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가만히 듣던 마법사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나와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만. 나는 타이밍의 마법사니 말이야. 오류 검증하느라 타이밍을 모두 흘려보내니 어찌 공존하겠는가. 통나무가 떠내려오는데 올라타야지, 언제 두들기고 있겠어."



소년은 그게 자신의 탓이냐고 이번에도 항변을 했지만, 타이밍의 마법사로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소년이 분통을 터뜨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통나무가 떠내려가고 있다고 전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천형 같은 소년의 그것은 재능이기도 한 것이, 그의 손에서 모든 것이 오류를 드러내니, 정밀 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그는 재능을 발휘했다. 나노 단위의 오차만으로도 실패하고 마는 각종 정밀 분야에서 소년은 각광받는 인재 대접을 받곤 했다. 오류 검증의 천재가 났다며.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이 오로지 자신만이 감각해내는 초능력이라는 것이다. 검증을 해내도, 그것을 수정해 주어야 할 엔지니어들이 그것이 어떻게 오류인지, 왜 오류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 그러니까! 이게 안보여요?"



소년은 자주 '아, 그러니까!'를 연발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모두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당연히 보이는 것으로 여겼던 탓이다. 그들에겐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소년의 지적을 무시해 버렸다. 검증을 의뢰하는 대표들조차, 처음에는 소년이 감지해 내는 오류를 인식조차 못 하는 엔지니어들을 닦달하며 소년을 높이 평가하다가, 점차 성과와 크게 상관없는 오류조차 검증해 내서 피곤하게 하는 소년을 부담스러워하더니, 급기야는 성과를 위해 일부러 감춘 오류들조차 소년이 검증해 내자 모두 황급히 소년을 손절해 버렸다.



소년은 점점 고립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이라고, 그 오류들이 모두 귀신처럼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이라는 진실을 소년은 깨달았다. 세상은 오류보다 속도를 중요시 여겼다. 오류 없는 완벽보다 오류를 감수하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지는 역사를, 오류 속에서 완성되는 엉성하지만 온전한 우주를 소년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소년은 결국 자신을 탑에 유폐시켜 버렸다. 오류 검증의 손에 무엇도 닿지 않도록 무오류의 탑 속으로 자신을 감금시켜 버렸다. 마치 무중력 상태와 같은 공간에서, 아무것에도 접촉하지 않고 무오류의 침묵 속으로, 소년은 침잠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탑 난간 위로 마법사가 홀연히 나타났다. 그리고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봐, 소년. 통나무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 올라타려면 떨어져 내려야 하지 않겠나?"

"어디로 가는데요?"

"그거야 올라타 보면 알겠지. 어쨌든 뒤집힌 세계일 거야. 그러니 한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라고 이안일 테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떨어져 내려야 한다는 마법사의 말에 소년은 뒷짐을 지어버렸다. 자칫 탑 난간에 손이라도 대었다간 이 과정에서 드러날 수많은 오류들이 자신을 덮쳐, 의사와 상관없이 추락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소년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고립되고 있는 마당에 어디든 외롭지 않을까. 심지어 떨어져 내리는 것도 겁나지 않았다. 그러나 눈 앞에, 자신에 손이 검증해 낸 오류들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견딜 수가 없다. 경로가 이미 정해진 세계도 오류투성이인데, 어디로 떨어져 내리는지 알 수도 없는 추락에는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드러나 자신을 압도할까. 소년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찔한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그 사이 마법사는 떨어져 내리고 없었다. 타이밍이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 날아오르는 어떤 소년들과 마법사의 비행궤적이 소년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소년의 한쪽 눈이 면도칼에 베인 듯 멀기 시작했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뒤집힌 세계 따위 들여다볼 생각 없으니까.'



소년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나의 세계를 포기했으니, 그 세계를 보기 위해 필요한 눈 따위는 없어도 좋다고 자신을 설득시켰다. '이안(二眼)'으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거부한 것이다. 501 지구 소년은 이제 외꾸눈 소년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쪽 눈이 멀면 뒤집힌 세계는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은 한쪽 눈에 두 세계가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쪽 눈이 멀면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두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한 눈에 겹쳐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 자체에 오류가 난 것이다. 두 세계가 겹쳐 보이니 어떤 것이 뒤집힌 세계의 상인지, 어떤 것이 그 뒤집힌 세계의 뒤집힌 세계의 상인지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소년은 자꾸 넘어졌다. 상이 겹쳐 보이니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오류 검증의 손이, 눈의 오류를 검증해내어 자꾸 자기 발목을 잡는 바람에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결국 소년은 자신의 손에 결박당하고 말았다. 그대로 주저앉아 발목을 잡고는 어색한 가부좌 자세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뒤집힌 세계와 그 뒤집힌 세계의 뒤집힌 세계.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에게 오류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의 눈에 두 개의 세계가 보이는 오류. 그리고 소년의 손이 그 오류를 감지하고는, 자신의 발목을 단단히 붙든 채 심각한 경고음을 계속 발산하고 있었다.



"씨발, 마법사 새끼야. 꺼져!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소년은 분통을 터뜨리며 탑 아래 뒤집힌 세계로 날아간 마법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잠시 망설인 사이에 떨어져 내려버린 마법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마법사는 타이밍의 마법사인 것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같은 하늘을 두 번 추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뭐래니? 누가 내 욕을 하나본데.'



뒤집힌 세계에서 탑에 거꾸로 매달린 마법사는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는 리모컨 안테나를 뽑아 간질간질한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귀찮은 듯 리모콘의 상승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501 지구 소년이 자신을 유폐시킨 무오류의 탑이 상승하며 뿌연 안개가 가득 낀 높은 하늘 너머로 멀어져 갔다. 물론 소년의 방언 같은 비명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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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년 이안/시즌2_ 뒤집힌 이야기] Chapter12. 숨겨진 소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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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이런 상상력은 어떻게 나오나요?
대단한 작품이에요.

실화랍니다. 어떤 우주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