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여름] 말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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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세기의 여름>의 첫 일요일이었다. 20세기의 첫 일요일은 어떠했을까? 2021년 말고 1901년의 첫 일요일. 그때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을까? 전 세계에 휘몰아 닥칠 일들. 전쟁과 혁명, 공황과 환희. 우리는 우리의 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가? 내일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면서 우리는 내일 일을 걱정한다. 걱정한다고 막을 수도 없으면서.



<20세기의 여름> 프로그램으로 <암호화폐 특강>이란 걸 했다. 오랜만에 말을 하니 갑갑했다. 어느새 말보다 글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반대였는데. 반대였던 시절에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때는 말을 해야 했으니까.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마음을 얻기 위해 그때는 주로 말을 했다. 그래서 말이 쉬웠다. 그런데 운명은 내게서 말을 빼앗아 가버렸다. 글을 쓰게 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주는 내게서 가혹하게 말을 가져가 버렸다. 방법은 단순했다. 말할 상대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미치기 전에야 혼잣말을 할 수는 없다. 글은 혼자서도 쓸 수 있지만 말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구 걸어 다녔다. 우연히 누구라도 만날까, 누구라도 말을 걸어줄까, 말하게 될까, 고립감. 우리는 고립감에 대해 말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고립감의 후유증은 말을 잃는 것이다. 말을 잃는 일은 장애를 갖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점점 사라지는 것과 같다. 존재가 희미해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사라지는 것이 공포스러워 계속 말을 했다. 혼잣말은 할 수 없어서 혼잣말 같은 혼잣글을 썼다. 100편을 썼다. 100편뿐이랴 얼마든지 더 썼다. 그래도 닿아지지 않았다.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말을 잃지 않으려면 글이라도 써야 해서 계속 혼잣말 같은 혼잣글을 썼다. 그걸 모아 책을 내자. 사람들은 왜 글을 그렇게 쓰시죠? 묻는다. 말을 잃지 않으려구요. 말을 잃는 건 사라지는 것이죠.



다른 건 다 견디겠는데 밥은 말이지. 혼자 먹는 밥은 정말 못 견디겠더라. 한 끼라도, 하루에 한 끼, 아니 일주일에 한 끼라도 누구와 밥을 먹었으면. 밥이 아니라 말 말이다. 한동안은 그것이 너무 간절했다. 그러나 고립과 단절은 정말 지독했다. 밥 먹자고 하는 말, 밥 먹으면서 하는 말, 밥 먹고 나서 하는 말. 잘 먹었다는 말, 즐거웠다는 말. 그게 그렇게도 귀하니? 왜 그걸 못하게 해.



20세기 소년은 펍이다. 펍은 술 마시는 곳이 아니라 말하는 곳이다. 카페는 혼자와도 펍은 혼자 오지 않는다. 혼자와도 혼자만 있지는 않는다. 바텐이랑 말을 나누고 옆좌석 사람이랑 초면에도 말을 나눌 수 있는 곳이 펍이다. 혼자 와서 혼자 있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공간에서 말을 하려고 하는 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말을 하다 말고 이걸 차라리 글로 쓰면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이 밀려오면 짜증이 난다. 펍에서 말을 해야지 왜 글을 떠올리고 있어.



오늘 말을 하며 글을 떠올리는 자신을 목격하고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말을 해야 되는데,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런데 말이 잘 안 나온다. 버벅대는 말은 버벅대는 글보다 더 갑갑하다. 도움이 될까 싶어 마이크까지 써보지만, 말은 더 왕왕 거릴뿐 잘 나오지 않는다. 글은 죽죽 써 내려가는데 말은 자꾸 목구멍에서 걸리고 가슴팍에서 멈춰선다. 말하는 법을 어떻게 다시 찾을까? 나의 말들을 어떻게 복원할까?



이 짜증은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짜증만이 아니다. 고립되었던 시절, 그 갑갑함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채로 갑자기 말을 하게 되어서 생겨난 울화 같은 것이다. 어딘가 해소되지 않은 그것이 나의 말을 막고 있다.



이제 나는 글을 거두고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다시 차단막이 쳐지고 글감옥에 갇히는 건 아닐까? 1901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의 말도 나의 글도 어떻게 될지 아무런 예측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코로나는 우리의 말을 어떻게 했는가?



말을 잃어선 안 된다. 소통이 아니라 말 말이다. 소통은 말없이도 가능하다. 우리는 글로 소통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말은 연결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짜다. 가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래서 춘자는 20세기 소년, 펍에 진입한 것이다. 우리는 말을 나눌 상대를 필요로 하니까. 그게 공동체니까. 체體는 몸이지 가상이 아니다. 물질이지 허상이 아니다. 체는 말을 한다. 말을 듣고 말을 나눈다.



그 말을 오늘 시도했다. 갑갑했다. 이 갑갑함은 말을 차단해 가는 이 시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암호화폐에 대해 말을 하겠다는데,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왜 글이 떠오르는 걸까? 돈만 벌면 말은 하지 않아도 되니? 영혼 없는 네네도 말로 치는 건 아니지?



누군가는 사기로 여기고 누군가는 금기로 여겨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이것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은 그 누군가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르나 말이 하고 싶은 마법사에게는 갑갑한 일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폄하하며 고립시키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이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기 시작할 때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이것은 이것에 대해, 이것을 말하기 시작할 때 존재를 나타내게 된다. 이것에 대한 말이 중요한 이유이다. 20세기 소년에서는 이것을 말해야 한다. 여기는 펍이니까. 말하는 곳이니까. 글쟁이들이니 글은 이미 써 붙여 놓았다. "암호화폐 결제 가능"이라고 말이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신기해하고 누군가는 관심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차례다. 암호화폐에 대해, 너의 꿈과 너의 차단당한 재능과 관계에 대해. 흘깃흘깃 염탐만 하며 글만 써대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고 말을 해라. 그래야 나도 말을 하지. 그래야 글 좀 고만 쓰고 말을 쓰지.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말을 멈추면 그것은 사라진다. 글로는 부족하다. 자꾸 글로 써대기만 해서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이다. 말을 해라. 그리고 지켜라.



오늘의 암호화폐 특강 끝.
다음에는 너에게 말 할 수 있기를.



그러자고 <마법의 아침>을 열었다.
글 말고 말을 나누자고.
밥도 같이 먹는다.
아침 10시까지 장충동 20세기 소년으로 오면 된다.
선착순이지만 뭐..
이건 말 안 해도 알 꺼다.



[20세기의 여름]

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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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으로 결재해보고 싶어지네요^^

예전에 스팀시티랑 선유기지에서 스팀결제를 해봤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돋네요.
스티미언들의 성지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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