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그냥 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in #zzan11 hou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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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그냥 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한 해 땅을 묵혔더니 잡초가 원시림보다 더 우거졌다. 오죽하면 로터리를 쳐달라고 부탁받은 트랙터 주인이 밭을 슬쩍 보고는 그대로 도망을 쳤을까 싶다. 기가 찼지만 별수 없었다. 그 무성한 풀숲을 홀로 예초기로 거칠게 쳐내고, 그 자리에 들깨를 심었다.

내심 만만하게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들깨는 그저 제초 작업이나 가끔 해 주면 알아서 잘 자라는 줄 알았다. 농약을 쳐야 한다는 생각은 단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깨달음은 언제나 늦고, 문제는 바로 그 안일함에 있었다.

세상에 그냥 되는 농사란 없었다. 앞서 심은 옥수수도 마지못해 살충제를 한 번 주긴 했으나, 단맛을 보겠다고 덤벼드는 벌레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 한 번 더 쳤어야 했는데'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밭두렁에 짙게 남았다.

병충해가 없는 줄로만 알았던 들깨에도 결국 사달이 났다. 진딧물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제 놈들의 독립국이라도 차릴 양, 무서운 기세로 점령지를 늘려가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결국 칼을 빼 들었다. 분무기를 들고 나섰지만,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예방하는 방제였다면 쓱싹쓱싹 약을 주며 두어 시간이면 끝났을 일이다. 이미 번질 대로 번진 뒤라 시간도, 힘도 곱절로 들게 생겼다.

잎 뒷면까지 약물이 충분히 젖도록 주라는데, 말은 쉬워도 무거운 분무기를 등에 지고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대며 버티는 일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역이었다.

점심 식사라도 하고 다시 나설 요량으로 겨우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곳에 늘 보던 '나'는 없고, 웬 낯선 늙은이 하나가 휑한 눈으로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내가 묻자 거울 속의 그놈이 씁쓸하게 답했다.

"많이 망가졌구나."

기가 막혀 "누가?" 하고 되물으니, 그놈은 "누구긴 누구야, 너지" 하며 툭 던진다.

"나?"

어이없어하는 나를 향해 거울 속 농부는 얄밉게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럼 너지, 여기 누가 또 있어?"

그 웃음 끝에 가슴이 싸해졌다. 사는 게 뭔지, 그저 잘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짓이 다 이렇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무엇하랴. 뜨거운 볕 아래, 나를 기다리는 분무기를 다시 짊어져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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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들깨가 잘 자라네요.
저희는 들깨가 풀에 잡아 먹혔어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