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27] 우연히 여든 다섯 할머니와….
오랜만에 동부 시장에 나갔다.
김치가 떨어져 가는데 배추값이
진정 넘겨다 볼 수 없는 경지인가
궁금하다는 가족1을 따라서.
시장에 나가면 으레 칼국수부터
한 그릇 하고 시작하는 게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라
칼국수집은 손님이 없다.
주인과 잠깐 ‘미친 폭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온다.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이런 데는 처음 와 본다면서
좁은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오늘 이빨을 세 개나 해 박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먹어야 집에
갈어 같어 들어왔슈.”
우리의 칼국수가 나왔고
할머니의 냉면 주문이 들어 갔다.
가족1의 오지랖 가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유전이다.
베트남 여행 때 현지인들 틈에
끼어 앉아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며 호구조사를 했던 양반이다, 장모님이.
“임플란트.
하나에 백만원씩, 삼백 줬지요.
아직은 나사 박을 만 한가봐.”
“몇 살이냐구? 몇 살 돼 보여요?
지금 팔십 다섯이요. 하하”
가족1은 제딴에는 깎아 잡아
70 조금 넘으신 거 같다고 인심을 썼고
나도 그쯤 생각했는데
장모님보다 한살이 많으시다.
“이 옷? 서울 백화점에서 산 거요.
나 있는 집에서 살았어.
딸 셋 중에 막내여.
아부지가 00면 면장이셨지.
손도 많았고 선물도 많이 들어왔어.
안 입어 본 옷이 없었다니께.
시집 가서도 잘 살았지.
남편이 일본서 건축 기술 익혀서
서산 와서 공사 많이 했어.
서산 뿐인가. 전국 다 다녔지.
나 고생 안했어요.
사람 두고 살았어요.
나돌아 다니지도 않았어.
이쁘단 소리는 들었지요.
피부도 좋고, 허리도 꼿꼿해요.”
“젊어 고생 안하면 늙어서도 육신이
덜 아픈 법이유. 골병이 안들었으니.”
냉면을 가져온 주인이 한마디 했다.
주인은 일찍 떠난 남편 대신 남매 키우느라
시작한 것이 이제 40년째
‘면’과 씨름 중이다.
“이빨 하는 게 힘들더라구. 입맛도 없고.
남편은 딱 일흔살에 저녁도 잘 자시고
아침에 깨우니까 돌아가셨어.
너무 아까워. 참 잘해 줬는데.
애는 아들 둘에 딸 하나 낳았지.
셋 다 서울 H대학 나왔어요.
손녀는 지금 S대 4년째 다녀.
다들 머리야 좋지.
남편이 머리가 좋았다니까요.
나? 난 중학교 나왔어.
언니들은 다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난 학교 가기 싫더라구.
아부지가 OO에서 우체국장하다가
고향으로 와서 OO면장 한 거지.
지금도 그 동네서
박OO씨 하면 다 알아요.
(OO면은 밭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동네인데,
겨울에 제설작업이 제일 느리다.)
“ 잘 살았어. 돈도 있었고요.
아쉬운 건 남동생이 일찍 세상 뜬 거지.
술을 너무 먹어서 쉰 다섯살에 죽었어.
누나, 먼저 가서 미안해, 하고 갔어요.”
“아이구 이가 안 맞물리네.
씹히지가 않아 못먹겠네.
싸달라고 해서 집에 가지고 가서
먹어야겠다……”
“혼자 살아요. 경로당은 안가요.
살살 운동하고 화단 가꾸고
그게 일이지요.
자식들은 한달에 한번 돌아가며 와.
얘기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오늘 여기 와서 첨 보는 분들하고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네. 하하.
자주 오신다구요?
그래요. 다음에 여기서 또 보면 좋겠네. 하하.”
할머니는 진짜 말이 고프셨던 모양이다.
얼얼한 턱을 자꾸 쥐고 문지르고
하면서도 말을 쉬지 않고 했다.
그러고 보면 가족1이 음식 솜씨는
꽝이어도 말을 잘 들어 주는
재주가 있다.
늙으면 외로움이 가장 두렵고
말동무가 필요하다.
배우자에게 잘 하자!
까먹지 말아야지.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도잠님 글 읽으니
삶이네요. ㅋㅋ
실화에요. ㅎㅎ
제가 글이 짧았네요.
할머니 말씀이 '삶' 이네요.
그렇게 읽었어요. 척하면 착이쥬. ㅎㅎ
말벗도 ..벗이죠^..흐흐
그럼요. 인간은 말 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지요.
ㅎㅎ 배우가에게 잘 하자!!
맞습니다요^^
ㅎㅎ 잘 하자!
도잠님~ 글솜씨가 참 좋으신 것 같아요~
한 번 시작하면 그냥~ 끝까지 주욱~ 읽게 됩니다.
그런데,
동부시장 배추값은 진정 넘겨다 볼수 없는 경지였는지요? ^^
세개 담아 놓고 2만 5천원 불러서 만들어진 김치 1만원짜리 사 가지고 왔어요. ㅎㅎ
헐...
배추값이 장난아니었네요.
정말 그 정도면 그냥 김치 사먹는 편이~ ^^
소설의 한 장면을 읽은 것 같네요.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제 5 회 스팀잇 포스팅 큐레이션 이벤트 참여자 글 - 2025-08-28
https://www.steemit.com/@talkit/-5----------2025-08-28
@talkit님이 당신을 멘션하였습니다.
멘션을 받고 싶거나 받지 않으시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빠른 시일내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늙어갈 분이 옆에 있다는 게
제일 큰 복이 아닐까 합니다
할머니의 살아온 삶이 글에 다 녹아 잇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