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보아에서 보낸 편지 6
리스본의 베렝탑. 적의 배를 감시하려고 건축되었는데, 나중엔 죄수를 가두었다고.
봄 햇살을 즐기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탑 근처 광장이 북적인다. 바람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요트들.
어제와는 다른 아제나스 두 마르 풍경.
바다의 방앗간이라고 한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받아 방아를 찧었다고. 오늘 아침의 바다는 사뭇 잔잔하여 어제와 대조를 이룬다.
이 동네에 가장 비싸다는 식당에서 돔 구이를 먹었다. 싱싱한 맛이 일품이긴 했는데, 와인 값이 비쌌다.
사실 그보다는 마주 보이는 테이블의 어느 가족이 더 신경 쓰였다.
잘 해야 삼십대 중반인 부부가 쭉쭉이를 빠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음식을 주문했다. 여자는 남자를 보지 않았다. 남자는 선그라스를 쓴 채로 밥을 먹었는데, 여자에게 말을 했지만 둘 다 웃지 않았다.
남자는 디저트로 나온 음식을 휴대폰으로 찍었고, 그걸 여자에게 보여줬으나 여자는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보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가 유아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갔고 남자는 돈 계산을 하고는 뒤따라 나갔다.
가장 경치 좋다고 소문난 동네에 와서 비싼 음식을 먹고 떠나면서 그들은 한번도 웃지 않았다. 최소한 내가 눈치 안 채게 살펴본 선에서는.
삶은 누추하다.
아름다운 자연도, 금발의 인형같은 아기도 미소를 찾아주지 못했다.
이후로 너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조용히 늙어 갔다.
어디선가 너도 나처럼 나이 들고 있겠지, 취한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30년 만에 너의 목소리를 들었다.
바로 기억 속에서 튀어 나온 그 목소리.
내가 너를 잊지 않았구나.
일상의 안부를 묻는 통화를 끝내고, 너무 빨리 끊었다고 자책하는 어리석은 나.
연결해준 친구로부터 받은 전화번호와 프로필 사진 속의 너는 놀라울 정도로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절대로 먼저 연락해 볼 용기가 없는 나는 가끔 사진만 훔쳐본다.
그리움도 보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이여.
너는 나의 사우다드Saudade다.
가장 경치 좋다고 소문난 동네에 와서 비싼 음식을 먹고 떠나면서 그들은 한번도 웃지 않았다.
말씀 하신 이 문장 왠지 모르게 서글픈 마음도 들고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내요
여행에 의미를 넣어보자고 사람 관찰을 좀 했네요, 쓱형. ㅎㅎ
마음 속 누구 있죠? ^^
여행이 무미건조해질까봐 10원짜리 감성 좀 칠해 봤습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