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지

in zzan4 years ago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지/cjsdns

어제인지 알았더니 그저께 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그제 점심을 먹으면서 한 이야기 이다.
라면 세 개를 끓여서 둘이 맛있게 먹으면서 오고 간 대화중에 나온 이야기로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지"라는 말을 했고 내가 잘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어도 메모 또한 잘 못하는 성격인데 이 말은 왠지 메모를 해 놓았다가 나중에 글을 써 봐야지 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됐지, 하는 말은 내가 한 말이고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맛있게 잘 먹던 라면을 삼분지 이 정도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며 서로 더 먹어 더 먹어하면서 라면 끓인 냄비를 상대 앞으로 서로 미루고 있는데 어느 순간 라면 면발처럼 엉킨 과거의 기억들이 냄비 속으로 들어앉는 것이다.

아직도 구수한 향기가 가시지 않는 것들 같은데 과거는 과거인지라 끊겼다 이어지는 영상들이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듯 70년대 서울 변두리 영화관에서 관람하던 영상들을 보는 듯 그래도 부분 부분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 나라도에도 아직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 시대의 대부분이 그랬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과 비교가 안되게 모든 것들이 부족했다. 넉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를 먹어야 연명하는 입들만이 풍성했다. 어느 집이나 식구들이 함께 먹어야 하는 가족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당시 흔한 이야기로 형편이 좀 피려면 입을 덜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있었으며 농촌 대부분에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도시로 나가서 돈 버는 일에 나서야 했다. 어느 집 딸은 어린 나이에 식모로도 가고 방직 공장으로도 가고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이 도시로 나가 공장이란 곳으로 가서 일들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청소년 노농 착취라며 법의 심판을 받기 십상인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노동현장의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취약하여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 젊은 나이에 꿈을 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자리 조차 얻기 힘든 세월이니 노동 환경이나 인권을 따질 겨를이 없고 따져서도 안되는 세월이었다. 그런 과거의 역사 속에 발전과 개발이라는 명제의 제물이 되어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수많은 희생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만큼 먹는다는 것이 부족하다 보니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배불리 먹는 것만이 최고의 행복인 것으로 착각하면서 지내온 세월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을 지내온 나로서도 요즘은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고 누구나 할 것 없이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영원 불변할 것 같은 밥사발의 크기부터 작아지고 잔치 역시 뭐든지 풍성해야 잘 차렸다는 인식에서 그집 잔치에는 뭐가 맛있다에서 이제는 그마저도 관심에 대상이 아니다. 옛날에는 잔치하면 먹으러 가는 것 이렇게 공식이 성립되었는데 이제는 잔치하면 뭘 먹지 뭐가 나오지 하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고 누가 결혼하는구나 하며 축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고 보니 먹는 거 하면 환갑잔치인데 이것도 먹는 것이 풍부해지고 사람들의 수명이 평균적으로 많이 늘어 나니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옛날엔 환갑잔치하면 생각나는 게 동네 사람 모두 배불리 먹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먹기 위해서 그런 잔치를 벌이지도 않고 환갑잔치가 먹는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변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배고픔의 설움을 아는 인구가 태반을 넘던 세월도 역사 속으로 묻혀가는 것이며 가정이나 식당에서도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다 보니 식단도 예전처럼 풍성함 위주보다는 슬림화 되고 여유 혹은 즐김 이런 것들이 자리 잡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구촌 어딘가는 점심만 먹는데 세 시간이라는 소리에 뭔 소리야 그러 곳이 어디 있어 그게 말이 되니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이해가 되는 그런 세월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이런 글은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이렇다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이유야 어이되었든 과거 우리가 겪어온 60년대 70년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옥 같은 가난을 헤쳐 나오는 길은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제도의 문제이기에 개인의 의지만으로 할수없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어느 사회나 안정되고 발전 하려면 마냥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 도움으로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받은 도움을 다시 누구 에게인가 돌려줄 수 있는 그런 의식과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지구촌 어느 곳 누구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이런것, 그런것을 이루기에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적이며 아름답게 설계가 된 것이 스팀이라는 생각이다. 늘 이 야기 하듯이 내가 스팀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팀과 애터미라는 것이 연결되면 함께하면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배고픔이라는 굴레에서 더욱 빠르게 벗어 날 수 있으며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한다는 것에서 자긍심까지 느낄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이다. 하여, 지구촌 곳곳에 스팀의 좋은 기운이, 튼실한 뿌리가 뻗어갔으면 펼쳐졌으면 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풍요롭게 되었나 를 생각해보면 길지 않은 세월 속에서 이룬 것들이다.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우리 속담에는 나라님도 가난은 구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스팀과 애터미가 함께하면 나라님도 구제가 어렵다는 가난을 물리 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난을 물리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본다.

그 해답의 첫 번째는 파워업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스팀을 내다 팔기만 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하는것은 아니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사람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염없이 주기만 하는 스팀은 매일 우유를 선물하는 젖소와 같다고 생각한다. 젖소가 양질의 우유를 많이 생산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스티미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위해서라도 스팀의 파워업은 성공의 길 첫번째 라고 본다.
스티미언 모두의 행복을 성공을 기원하며...

감사합니다.

2021/04/16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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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very nice post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이제 시작하여 힘이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빛이나길 바라며 오늘도 포스팅거리를 찾아봅니다, 화이팅 입니다! 감사해요

Thank You for sharing Your insights in Asian countries.

Thank you in the future , I'll follow you.

Important update. Thanks for sharing!

라면 세 봉지를 두분이 다 못드시다니, 양이 많이 줄었군요. 같이 잘 사는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Thank You for sharing Your insights...

제 친구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해주세요.